영유아 보육 기관,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와 경의(敬意)
[교육플러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보육을 통해 확고한 후손을 잇고자 하는 본능을 간직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 인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격(格)이 다른 보육 즉, 사랑을 받고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그래서 평생 나누어야 할 사랑의 총량을 결코 여백으로 남기지 않는다.
예컨대 조부모의 손주에 대한 ‘내리사랑’을 보자. 이는 마치 부모로서 자녀에게 혹 쏟지 못한 사랑을 대체하거나 보완하여 총량의 균등화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숭고함처럼 보인다. 이는 창조주로부터 상속받아 모든 인간이 간직하는 생명에 대한 고귀한 본분이라 믿는다.
필자는 환갑을 맞이한 2020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주와의 인연을 맺었다. 손주는 11월의 여아(女兒)로 태어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위기 속에서도 이제 손녀는 만 15개월의 영유아기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부쩍 재롱이 늘었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여아라서 그런지 머리에 핀 꼽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 예뻐라"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보답하려는 듯 더욱 예쁜 짓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럴수록 모두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탄사 “아! 예쁘다~”를 연발하며 목소리를 돋우고 있다. 이제는 “아~ 예쁘다!”라고 말하면 즉시 알아듣고 가까운 곳의 어느 물체든 ‘쓰담쓰담’하는 동작을 직접 보여준다.
이런 천사 같은 아기를 보며 누구라도 ‘고슴도치 사랑’으로 충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2월 초순,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며느리가 오랜 권고휴직과 육아휴직을 마치고 출근하면서 아내(할머니)는 손녀를 온종일 돌보아야 했다.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예전에 자녀를 키울 때와는 많이 다른 상황인지라 종일 돌봄은 환갑을 지난 할머니에게 힘에 부치는 노동이 틀림없다.
2주째 되는 어느 날은 몸살기를 느끼며 두통을 호소해 약을 먹을 정도로 적응에 힘들어했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필자는 조금이라도 돌봄에 힘을 보태고자 근무 시간이 끝나면 칼퇴근하려 했지만 신학년도 개학 준비로 바쁜 학교는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드디어 3월이 되어 정식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1~2주 동안은 하루 1시간 정도의 적응 기간을 거쳐 이제는 2시간여 정도로 시간을 연장하여 보육에 임하고 있다.(원생 개인에 따라서는 돌봄 시간이 달라질 수 있음)
어제는 하루 동안 변을 보지 못한 손녀가 등원해야 했다. 할머니는 아침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산균 음료를 먹이고 2시간 후에 다시 데리러 갔을 때 역시나 큰 것을 배설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지요?”라는 할머니의 말에 어린이집 원장은 “아~ 향기가 좋던대요! 여기가 편한가 봐요. 우리 어린이집, 부자되겠어요~”라고 농담하며 대응해 주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지난 2월, 손녀를 등원시키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 부모, 조부모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그날 원장은 보육 전문가답게 자상하게 여러 가지 설명을 하면서 “이제부터는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어린이집과 삼위일체가 되어 아기를 중심에 두고 조화를 이루어 보육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말에 필자는 보육 전문가에 대한 신뢰감과 전문성의 아우라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린이집의 보육환경은 영유아가 놀이 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잘 갖추어져 있다. 온갖 정성을 들여 친환경적인 놀이 도구를 만들어 곳곳에 배치했으며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놀이방은 공간을 최적으로 활용하여 이른바 공간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영유아의 건강을 생각해 특별히 친환경 재료로 장난감 인형 및 놀이 기구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다.
요즘은 매일매일 소독을 하면서 관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즐거운 놀이 위주의 시간 운영은 실내에서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시간과는 별도로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날에는 거의 공터나 놀이터로 나와 흙, 모래를 밟고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친화시키는 것이 돋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유아에게 제공하는 점심이나 간식은 건강한 채식 위주 식단으로 무공해 자연식품을 활용하고 직접 텃밭에서 가꾼 야채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많은 잔손이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보육의 정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세밀한 관찰과 집중으로 기록한 모든 행동은 노트에 장문으로 정성스럽게 별도 관리하여 매일 가방에 넣어 가정에 전달되고 부모와 궁금한 점과 관심사를 상호 필문필답하며 소통하는 모습은 가히 감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어린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영유아를 보육하는 어린이집은 단지 일시적인 머무름의 장소를 넘어 그 이상의 숭고함을 느끼게 하며 이는 곧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경의(敬意)를 유발하였다.
영유아의 보육은 생명 유지의 출발점이다. 아울러 애착 관계를 유지하며 인성의 형성에 더없이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부모와의 긴밀한 애착 기간을 교대하며 또 다른 부모로서 끝없는 사랑으로 돌봄에 전념하는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에 대한 격려와 응원, 그리고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한 것은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국다운 위상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라 할 것이다.
그동안 사회의 여기저기 어린이집에서 국민적 분노를 샀던 불미스러운 아동학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어떻게 그런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어린이는 어른의 고향’이라 했다. 어른들은 천사 같은 어린 생명들에게 사랑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다시금 되돌아본다. 인간의 역사에 사랑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내리사랑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다. 이는 인간이 어떠한 수단이 아닌 진정한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칸트의 정언명령을 들추지 않아도 이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마땅한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작은 생명에 무한 사랑을 쏟고 있는 보육 담당자들에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경의를 표하며 그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전폭적인 행·재정적 지원이 추가되고 우리 사회는 더욱 그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보육환경을 만들 것을 강력히 소망(所望)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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