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확장보다는 교육 주체가 주인 되는 공간으로
한 타임에 돌아가는 수업 행정학급 넘어서지 않아야

[교육플러스] 논란의 고교학점제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최종 포함됐다. 그러나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현장에서도 고교학점제 시행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이슈의 중심에 있는 고교학점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함께 고교학점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박시영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교사 
박시영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교사 

 

1. 고교학점제에 대한 오해: 고교학점제는 학교 공간이 부족해서 적용하기 어렵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 조성 지원 컨설팅을 하러 다니다 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우리 학교는 너무 오래된 옛날식 구조라, 혹은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서, 고교학점제를 운영할 여건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막상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하려니 너무 손을 볼 데가 많거나, 혹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난감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민의 내용도 다양했다. 공강이 발생하면 공강 시간에 학생들이 있을 공간이 필요하고, 이동수업을 하려면 사물함을 놓을 홈베이스도 만들어야 하고, 수업을 많이 개설하려면 교과 교실도 추가로 만들어야 하고, 선진화된 가변형 학습실(요즘 트렌드라고 하니)도 만들어야 하고…….

또, 오래된 학교라 복도가 좁아서 사물함을 교실에서 뺄 수 없는 경우, 비어있는 교실이 많아 그 교실을 다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경우, 학교가 미로처럼 되어 있어 학생의 이동 동선을 고려하기 힘든 경우 등 학교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달라 고민의 내용도 제각각이었다.

물론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서 수업과 학생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입인구가 많은 신도시는 교실이 부족해서 난리고, 학생이 빠져나가는 농산어촌은 학교 공간이 남아돌아서 난리다. 공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학생 수와 반비례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려니, 학생 수가 많아 개설 과목 수요가 높은 학교는 공간이 부족하고, 학생 수가 적어 개설과목 수가 적은 곳은 오히려 교실이 남아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

2. 고교학점제에 대한 진실 : 많은 공간 확보가 고교학점제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시스템의 큰 변화이다. 학교에서 운영되는 모든 것이 교육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완벽하게 발맞추려 한다면 교원 수급, 대입, 교원업무 재편성, 학급 중심 담임 시스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되고 함께 변화해야 할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학교 공간인 것도 사실이다. 고교학점제는 선택형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교실제는 중요 요건이 된다.

그렇지만 ‘교과교실제’가 반드시 ‘다수의 교과 교실’, ‘선진화된 교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과목이 개설되어야 하니 교실이 많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교과 교실이니 교실 안에 교과와 관련된 선진화된 형태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인식은 고교학점제와 교과교실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과목 개설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은 맞지만 단위학교의 운영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과목을 개설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학교가 한 타임에 운영할 수 있는 과목 수와 가용 가능한 교실, 교사 수급의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 개설하는 것은 학교에 큰 부담이다. 과한 과목 개설로 발생한 교실 부족과 교사 수급 부족, 교사 시수 과다는 수업의 질 하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한 학년이 행정학급 7개 반으로 구성되는데, 한 타임에 운영되는 수업이 7개 반을 넘어 10개, 11개가 된다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한 학교의 노고에는 감탄할 만한 일이지만, 교사의 시수와 수업 부담, 공간 확보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외부 강사가 충분히 확보되고, 학교에 유휴 교실이 많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학생들은 소인수로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다양한 개설 과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교사도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의 가용 범위를 넘어선 백화점식 과목 개설은 오히려 학교에 부담을 준다. 다양한 과목 개설은 학교가 운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에 유휴 교실이 없다면 한 타임에 돌아가는 수업은 행정학급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맞다. 그리고 학교 내 특별실을 포함한 유휴 교실이 1, 2개라도 있다면 +1, 2개 정도의 수업이 더 개설될 수 있다.

또한, 교실 행정학급과 교과교실을 함께 사용하고, 이동수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고교학점제 운영 시 기존 학급(행정학급)보다 무리하게 많은 추가 교실이 필요하지 않다.

A고등학교 교실 푯말- 교과 교실과 행정학급이 같이 표시되어 있다. 일본어 교실(교과교실)이기도 하면서 2학년 2반(행정학급) 교실이다. 이 학교의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매시간 이동수업을 한다.
A고등학교 교실 푯말- 교과 교실과 행정학급이 같이 표시되어 있다. 일본어 교실(교과교실)이기도 하면서 2학년 2반(행정학급) 교실이다. 이 학교의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매시간 이동수업을 한다.

교과교실제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기존 교과교실제 사업에 기인한다. 과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추진했던 교과교실제는 학생이 시간표에 따라 교과별 전용 교실을 찾아가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고교학점제와 맞닿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학생의 선택 과목에 따른 이동이 아니라 학급 전체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교과 교실로 이동하는 형태여서 의미 없이 이동 피로도가 높다는 비판이 많았다(한 학급 내 시간표가 거의 같은 중학교에서 교과교실제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행정학급 외 별도 교과 교실을 두고 교과 교실에 창의적 수업 환경을 구축한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교구와 선진 시설을 갖춘 형태도 있었는데, 당시의 화려했던 교과 교실을 떠올리고 교과 교실 구축에 부담을 느끼는 학교들도 있었다. 고교학점제를 하려면 거의 모든 교실이 교과교실화 되는데 시설을 구축할 예산도 부족하고 품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선진화된 교실 시설은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선 반길 일이다. 수업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교과 교실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과거 교과교실제의 경험을 통해 고가의 장비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관리만 어려웠던 상황을 알고 있다.

선진화된 교실은 수업의 변화가 있어야 제대로 된 활용이 가능하고, 수업의 변화는 교사가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수업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교사가 수업 연구보다 행정업무와 생활지도의 책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은 매우 척박하다.

고교학점제에서도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과 평가의 내실화이다. 그리고 학교 공간도 백화점식으로 다양하고 화려한 곳을 지향하기보단, 수업의 질을 담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3. 학교 공간에 대한 고찰

학생들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런 학교가 학생들에게 행복한 공간이 되도록, 유의미한 곳이 되도록 학교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혁신학교 운동, 고교학점제 모두 그런 맥락에서 추진한 정책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 공간에 대한 논의도 함께 되어야 한다. 

학교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학교 안의 시설은 시간이 가면서 좀 더 나은 형태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학교를 답답한 공간으로 여긴다. 고교학점제를 떠나 그 이유에 대해선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원인은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있다.

학교 공간의 주인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교육 주체이다. 하지만 여태껏 우리는 그 공간의 주인이 된 적이 없다. 공간의 주인으로 그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원하는 교무실 형태에 대해, 수업하는 교실에 대해 교사의 의견이 반영된 적이 없다. 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학생들도 자신이 배우는 공간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낼 기회를 가진 적이 없다.

고교학점제의 도입과 함께 학교 공간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는 현장 요구에 따라 교육부와 교육청은 2019년부터 ‘학교공간 조성 지원 사업’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2020년 41개 학교가 공간 재구조화를 진행했고, 2022년에는 300개 학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와 연계해서 진행된다(교육부는 2020년 7월 17일에 한국판 뉴딜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도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 조성 지원 사업 (교과교실제) 중앙 컨설턴트 워크숍 자료집
2021년도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 조성 지원 사업 (교과교실제) 중앙 컨설턴트 워크숍 자료집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사용자 참여 설계’의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권장한다. 교사와 학생이 참여하여 설계하고 공간을 리모델링한다. 교육 주체의 의견이 반영되어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반길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또 다른 맹점이 생긴다. 교사와 학생이 공간에 대한 바람을 담아 원활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하는 방식의 참여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에는 학교 사업으로 내려오다 보니 학생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교사 의견을 모으는 것도 전부 교사의 업무가 된다. 담당 교사는 이번엔 건축사가 된 양 건축의 전문적 용어와 영역, 예산 문제까지 신경써야 한다.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까지 전부 감당하다 보니 차라리 예산을 받지 않는 게 낫겠다는 푸념을 하게 된다. 학교의 사업에 교사와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지만, 소통을 넘어선 행정적인 업무까지 하면서 업무 과중이 된다.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해 학교 공간을 일부 재구조화한 적이 있다. 이때는 교육부 사업으로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고, 도교육청의 다른 사업을 신청해서 공간을 바꾸었다. 그 사업은 사용자 참여 설계로 진행했는데, 도교육청에서 정해준 건축사가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신청한 학생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주도했다.

담당 교사도 물론 곁에서 학생들 모집이라든지 SNS로 소통할 공간을 만든다든지의 역할은 했지만, 의견 수렴과 조율의 과정, 설계 발표까지 모두 건축사가 알아서 해주니 업무는 훨씬 줄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직접 진행한 건축사가 설계·공사를 진행하면서 학생과 교사가 원하는 모습으로 공간이 변화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학생과 교사의 만족도는 높았다(예산이 부족했던 것은 논외로 하고).

 학생들이 참여해서 아이디어 내고, 건축사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사진=박시영 교사)
 학생들이 참여해서 아이디어 내고, 건축사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사진=박시영 교사)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고교학점제는 공간이 많아야 운영 가능한 것도, 선진형 교과교실의 모습을 갖추어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학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과목을 개설하고 질 높은 수업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지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공간이 뒷받침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그것은 이 공간을 사용하는 교육 주체가 공간의 주인이 되어야 해소될 수 있다. 학교 안에 쉼이 가능한 포근한 공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쾌적한 연구실, 마음에 안정을 주는 친환경 공간 등 화려하지 않아도 교사와 학생이 원했던 공간으로 이제는 학교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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