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교육부가 전 세계 16개국에 설립한 34개 재외한국학교는 세계 각국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며 매년 한국 교사들을 선발해 초빙교사나 파견교사 형태로 지원한다. 해당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프놈펜·하노이(대련)·광저우·대련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재외한국학교 근무에 꿈이 있지만 망설이고 있다면 그 도전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첫 편은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의 이야기이다.

프놈펜에 있는 왓프놈 사원에서.(사진=이은혜 파견교사)
프놈펜에 있는 왓프놈 사원에서.(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집에 있어도 학교 생각만...


“안되겠어! 토요일은 어디든 나가야겠어!”

프놈펜에 도착하고 3주는 학교와 집만을 오갔다. 올해 파견교사 선발 시기가 유난히 늦어졌기에 개학 준비 기간이 너무 빠듯하기도 했고, 학교의 시스템에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생각에 긴장도 많이 되었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컸기에 앉으나 서나 학교 일만을 생각했다.

너무 바쁘고 힘들어 토요일에도 집에서 쉬었는데, 집에 있어도 학교 생각만 났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파견근무로 여기 왔고 학교를 부흥시키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왔지만, 충전 없이 자꾸 에너지를 소모하기만 하는 것 같았다.

속상한 일로 우는 날도 많았다. 힘이 들고 지쳐가자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잘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나의 충전법이 ‘일단 토요일에는 무조건 나가보자!’였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험 기회 "기록으로 남겨 볼까"


처음 파견교사로 합격했을 때 한국의 원적교 교장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곳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도록 하세요.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사실 재외한국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기에 이곳에서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는 선생님들이 많다.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하시기도 하고, 책을 내는 경우도 있으며, SNS를 꾸준히 하시거나 일기를 쓰시는 분들도 있다. 자기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지런함과 재주는 없고, 체력이 약한 탓인지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쓰러졌다.

대신, 토요일 하루만큼은 나의 ‘힐링데이’로 정하고 무조건 외출을 하고, 그 날 하루를 유튜브 영상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이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귀한 추억자산이 될 것 같았다.

한 선생님이 응원해주시면서 “1년이 52주니까 약 50편씩 3년이면 150편. 150편 다 만들면 한국에 가겠네요!”라고 해주셔서 생각보다 방대한 3년 장기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프놈펜에서의 토요일 동영상 150편 만들기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한 주 한 주 추억을 쌓고 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한 주 한 주 추억을 쌓고 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일만 한다고 일이 잘 될까?..."워라밸의 균형 잡기"


유튜브 시리즈의 제목을 ‘Saturday in Phnom Penh’으로 정하고, 토요일은 프놈펜의 유명하고 아름다운 장소들이나 맛집을 혼자 찾아다녔다.

토요일 여행에는 늘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섰다. 아름다운 공원들을 둘러보는 데는 사실 1시간이면 충분했고 열대기후 속에 장시간 도보 여행은 불가능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카페에 5-6시간씩 앉아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나의 토요일 힐링이었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나의 기록을 모아 나갔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생각보다 기분 전환이 되고 에너지가 충전되어감을 느꼈다. 이국적 풍경 속에 싱그러운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3명으로 시작된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댓글이 달리며 캄보디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재밌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놈펜에 도착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다음 주에는 어느 식당과 커피숍을 갈지 구글 지도에 찜해두는 재미도 있었다.

토요일의 주된 일정은 시원한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독서를 하는 것이 되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토요일의 주된 일정은 시원한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독서를 하는 것이 되었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역시 일과 휴식은 병행되어야 각각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 같다. 만약 매일이 휴일이면 휴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고, 반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해도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옛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은 도끼로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나무를 베었고, 한 사람은 50분 도끼질과 10분 휴식을 병행하였다. 그런데 후자의 장작이 많은 것을 보고 앞의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휴식을 가진 나무꾼이 이야기했다.

“나는 그 10분 동안 도끼날을 갈았다네.”

토요일, 팩토리 프놈펜에서 자전거 타며 재충전을 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토요일, 팩토리 프놈펜에서 자전거 타며 재충전을 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끝이 있기에 지금을 소중하게 느껴야"


어쩌면 이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일과 휴식이 병행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근무지가 집과 멀어 주말부부로 지냈다. 평일은 근무지역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저녁에야 집으로 왔고, 토요일에는 거의 밀린 집안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었다.

일요일 역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좀 쉬다가 저녁에 다시 근무지역으로 돌아가는 생활들의 반복이었다. 월-금요일은 학교업무의 날이었고 토요일은 가사노동의 날이었다.

그런데 프놈펜에서 이렇게 토요일을 혼자 여행하며 보내다 보니, 한국에 돌아가면 이제 토요일은 집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남편과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니며 ‘우리’의 토요일을 영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찮다며 반대할 줄 알았던 남편에게 전화로 나의 계획을 말하자 ‘너무 좋은 생각이다’라고 말해주어서 놀랍도록 기뻤다.

프놈펜에서는 싱그러운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프놈펜에서는 싱그러운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사진=이은혜 파견교사)

우리의 삶은 흘러간다. 삶의 순간들을 기억 속에 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매개가 필요하다.

재외한국학교에 와서야 비로소 나의 삶의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에서는 딱히 나의 삶을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머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3년 후에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 ‘기록’을 꼭 남겨야 한다는 기분 좋은 의무감을 안겨 주었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고 살지만, 우리는 언제가 죽음이라는 끝의 순간이 있다. 그 끝을 생각하면 지금이 시리도록 소중하다.

평일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토요일만큼은 가족과 휴식을 하며 행복한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사진을 폰에만 저장해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터넷 플랫폼을 정해두고 꾸준하게 기록해 나간다면 그 자체가 가족의 역사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고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잃어버리지 않는 앨범이 된다.

한국에서 ‘우리’의 토요일 기록을 시작해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이 생기자 3년 뒤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생활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무언가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삶이란 늘 설렘으로 가득하게 된다. 물론 이 설레임은 긴 시간 떨어져 지내다 마침내 만나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겠다.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이은혜 프놈펜한국국제학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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