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예술에서 엿보기...영화 '채비'와 책 '카프카와 인형'

[교육플러스] 국가발전의 전략 중 하나로 의료와 바이오 분야의 발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예전에는 의학계열 학과를 가야 의료를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최근에는 의료영역의 확장과 융복합 학문의 등장으로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의료와 연계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진로의식을 넓히고 인문교양으로서의 의료를 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청소년을 위한 의료인문학’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영화 채비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채비 포스터(출처=네이버)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의대면접에서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면 학생이 당황할 것입니다. 일단 어떤 상황에서 설명할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의미있는지를 생각해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상황이 주어진다면 좀 더 답변이 쉬울까요?

죽음을 앞둔 70대의 노인이 있다. 그녀에게는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7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30대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이 아들에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고 있다.

[물음] 학생이 노인의 입장이라면 아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설명할 것인지 말해보시오.

이제 좀 더 문제가 명확해 졌습니다. 그런데 발달장애를 겪는 장애인에게 죽음을 설명하라니요?! 평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는데, 어린 아이 지능을 가진 성인에게 설명하라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중학교 사춘기를 겪는 과정에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최초의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고 죽으면 사후 세계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공부하랴, 미디어 보느라 스스로를 진지하게 탐구할 시간이 없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학생이라면 평소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비’라는 영화에서 죽음을 말하는 방법 배우기

2017년에 국내 개봉된 ‘채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조영준 감독은 우연히 80대 노모가 50대 지적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애순으로 불리는 70대 노모와 인규라고 불리는 30대 지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감동적인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엄마(고두심 역)가 죽기 전에 아들(김성균 역)에게 죽음을 알려주려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총 4가지 방법이 제시됩니다.

1) 나의 죽음을 여행에 비유하여 말하기

2) 나의 죽음을 동물의 죽음에 비유하여 말하기

3) 나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을 통해 말하기

4) 나의 죽음을 종교를 통해 말하기

과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을까요? 4)번을 통해 인규는 죽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화에 비친 각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의 죽음을 여행에 비유하여 말하기 : 엄마는 인규에게 자신이 여행을 다녀올테니 밥잘먹고 있기를 신신당부하고 달걀부침을 하는 방법까지 일러줍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고 죽어버리게 되면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릴 인규를 상상해 보니, 이 방법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 방법은 죽음을 알리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2) 나의 죽음을 동물의 죽음에 비유하여 말하기 : 엄마는 시장에서 병아리 장수를 보고 떠오른 생각은 ‘병아리가 죽는 모습을 보면 인규가 죽음이 무엇인지 알겠지’라고 생각하고는 병아리를 삽니다. 이 때 “제일로 금세 죽을 것 같은 놈으로다가 몇 마리 (줘요)”라고 하면서 집에 병아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인규가 몇 일 키우다가 죽어버린 병아리를 보고는 ‘안 움직이네’라는 반응 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도 실패였습니다.

3) 나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을 통해 말하기 : 엄마는 인규에게 검은 옷을 입히고 장례식장에 데려가게 됩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흐느끼는 것을 들은 인규는 뛰쳐나가게 되고 엄마를 찾으며 시장거리를 뛰어다닙니다. 죽음을 알리기 보다는 인규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을 알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역시 이 방법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4) 나의 죽음을 종교를 통해 말하기 : 이제 남은 방법은 평소 친하게 대해주는 목사님에게 인규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는 목사님과 인규만이 대화를 하게 됩니다. 대화를 마친 인규의 표정이 밝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전화나 연락은 되지 않지만 종종 기도를 통해서 만나고, 하늘나라에서 삶의 여기보다 훨씬 행복하고 좋다는 말을 합니다. 오히려 7살 지능의 아들은 내심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죽음을 알리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인규에게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면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엄마를 찾지 않을까요? 이제는 하늘나라로 간 엄마의 소식을 전해줄 목사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돌아가신다면 그 다음은 누가 엄마와 목사님의 소식을 전해줘야 할까요? 여러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이 정도라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라고 봅니다.

(사진=송민호 칼럼니스트)
(사진=송민호 칼럼니스트)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이별의 문제를 바라보기

제가 성인이 되어서 재미나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이란 책이며 작가는 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입니다. 어린 소녀가 공원에서 가지고 놀런 인형을 잃어버려서 울고 있을 때 길을 지니가던 신사(카프카)가 소녀의 슬픔을 달래주는 내용입니다. 소녀에게 인형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는데, 미처 인형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급히 떠났다고 둘러대고는 내일 다시 공원에서 만나면 인형이 소녀에게 전달하라고 쓴 편지를 주겠다고 약속하죠. 그리고 몇 일 동안 소녀와 신사는 공원에서 만나면서, (신사가 직접 썼고 인형의 소식이 담긴) 편지를 소녀에게 전달합니다.

나중에는 인형이 외국으로 떠난 다음, 좋은 사람과 만나서 결혼하다는 얘기가 담긴 편지를 끝으로, 소녀는 인형의 행복을 빌어주고 그와 이별로 겪을 슬픔을 떨쳐내게 됩니다. 짧은 동화였지만 여운이 깊이 남았고, 소녀에게 인형과의 이별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단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례 중의 하나라고 봐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사진=송민호)
(사진=송민호)

죽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장해 보기

시간이 되신다면 2009년 작품인 ‘챈스 일병의 귀환’이란 영화도 추천해 드립니다. 2004년 9월에 이라크 전에서 전사한 미해병 챈스 펠프스 일병의 유해를 유족에게 운구하는 책임을 맡았던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 중령의 실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전사자 챈스일병을 그의 상사인 케빈 베이컨 중령이 그의 고향까지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는 개인의 죽음을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송민호 칼럼니스트
송민호 칼럼니스트

송민호는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사관학교 사회인문학처 교수,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 벤처 휴먼디자인랩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각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기획력과 판단력이 빠르고 정확하며, 추진력이 강한 것이 장점이다. 칼럼니스트로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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