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의료인이라면 한 번쯤 접하게 되는 의료윤리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을 간략히 소개한다. 여기서 다루는 생명 의료 윤리의 네 가지 원칙은 미국의 생명 의료 윤리학자 비첨과 칠드레스(T. L. Beauchamp &J. F. Childress)가 그들의 저서 '생명 의료 윤리학의 원리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에서 제안한 생명 의료 윤리학 방법론이다. 이를 흔히 원칙주의라 부르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하향적 접근법에 속하면서도 그것을 좀 더 구체화시킨 방법이다. 전통적인 하향적 접근법은 대체로 하나의 궁극적인 도덕 이론을 내세우고 그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의료 윤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반면 원칙주의는 네 가지 원칙을 구체적인 의료 윤리 문제에 적용시켜 도덕적인 답을 찾아 나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원칙이란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악행 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다.

대표적인 네 가지 의료윤리의 원칙은 아래 도표처럼, 의료인 중심 원리와 환자 중심 원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료=송민호)
(자료=송민호)

각 원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자율성 존중의 원칙

의사가 일방적으로 환자의 진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환자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진료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자율성 존중의 원칙의 핵심입니다.

자율성을 존중하려면 우선 개인의 자율적 의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즉 의사는 진료 행위를 하기 전에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의료 행위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행위인데, 의사는 그 전문 지식을 갖고 있으나 환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비대칭성이라 불리는 문제 때문에 환자의 동의가 진정한 동의인가 하는 다툼의 소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의료 윤리학에서는 이를 '충분한 설명에 의거한 동의(informed consent)' 물음이라고 부릅니다.

윤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위나 동의는 도덕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동의가 이루어지려면 동의 대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면 의사는 언제나 질병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솔직하게 환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까요?

여기서 일차적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물음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진실을 말하는 것이 환자의 치료에 오히려 해롭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보 공개에 한계가 있다면, 의사는 어느 정도까지를 환자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게 맞을까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환자의 치료를 위해 의도적으로 플라시보를 사용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요?

자율성을 훼손한다 해도 허용되어야 한다면 그 정당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질병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안다고 해서 환자의 결정이 모두 윤리적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병자의 의사는 존중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한 정보에 의거한 동의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어느 정도이어야 할까요?

이렇게 복잡한 상황과 질문에 대해 해법을 찾아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율성 존중의 원칙’과 관련된 연구분야입니다.

히포크라테스(사진=픽사베이)
히포크라테스(사진=픽사베이)

(2) 악행 금지의 원칙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환자에게 해악을 입히거나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데는 의술을 결코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를 악행 금지의 원칙이라 부릅니다.

언뜻 보기에 의사가 환자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자명해 보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선 개념적으로 '악행'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할까요? 정신적 해악이나 재산상의 손실 등도 악행에 속하지만, 의료 윤리학에서는 신체적 악행이 우선적인 고려 대상일 것입니다.

악행이 무엇인지 밝혀져도 우리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악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겠죠.

예를 들어 신장이식 수술을 할 때 우리는 기증자로부터 신장 하나를 제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신장 제거는 분명 기증자에게 악행을 하는 것이지만, 이는 다른 환자를 살리는 데 불가피하게 요구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악행이 허용되며, 어떤 조건 아래서 악행이 허용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악행이 허용되며, 어떤 조건 아래서 악행이 허용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제기되는 이런 상충뿐 아니라 모든 행위가 지닌 양면성 때문에 한 개인에게도 이처럼 상충되는 물음이 일어납니다.

의료 행위 역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감기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는데 기여하여 콧물이나 기침을 멈추게 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그 부작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에게 악행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행은 정당화 됩니다. 이처럼 부작용이 있는데도 정당화되는 의료 행위는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정당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런 물음이 이중 결과의 원리(the principle of double effects)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중 결과의 원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감기를 낫게 하려고 주사를 놓았지, 부작용을 일으킬 의도로 주사를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당화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중 결과의 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부작용이 있는 의료 행위의 정당성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중 결과의 원리 옹호자들은 대체로 행위의 본래적 성질, 인과성, 의도, 비율성 같은 기준이 만족될 경우, 비록 나쁜 결과가 발생해도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정의의 원칙과 선행의 원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송민호 칼럼니스트
송민호 칼럼니스트

 

송민호는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사관학교 사회인문학처 교수,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 벤처 휴먼디자인랩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각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기획력과 판단력이 빠르고 정확하며, 추진력이 강한 것이 장점이다. 칼럼니스트로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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