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김덕년의 행복한 교육 이야기'를 통해 우리 교육의 소소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교육 현장에 놓여 우리를 다치게 하는 사금파리나 작은 돌멩이를 치우는 일부터, 운동장 한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민들레를 보고 미소짓는 아이를 보며, 우리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휴가 기간 지리산에 다녀왔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산은 그리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산에서 지내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온종일 듣는 새소리도 정겹고, 밤새 들리는 계곡 물소리는 더 친근하다. 숲길을 걸을 때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래도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건 무리다. 숨이 턱까지 차는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귀에 들리는 이명 소리는 그다지 기분 좋지 않다. 산에 가더라도 대부분 중턱 어디쯤 머물다 내려오는 게 전부였다.

이번에도 출발은 호기로웠다. 일상에서 벗어나니 모든 게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기분이 좋으니 정상까지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큰 오산이라는 걸 깨닫는 건 출발 직후였다. 일단은 동네 산을 오르듯 물병 하나 들고 나선 것도 그랬고, 도보 여행하듯 운동화에 반바지 덜렁 입고 나섰으니 산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걸 자인한 꼴이다.

함께 길을 떠난 아내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게다가 날은 덥고 습했다. 수도권 지역에는 폭우가 퍼붓는다고 했다. 사상자도 여럿 나왔다고 한다.

한 걸음이 두 걸음 되고, 다시 세 걸음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뚝뚝 흘리며 아내보다도 훨씬 처져 걸었다.

이대로 갈 수 있을까. 그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아내가 걸음을 늦춘다. 또다시 잔소리 폭탄이 쏟아지리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예상치 못한 말을 한다.

“괜찮아. 우리 함께 발맞춰 천천히 걸으면 돼.”

하필이면 알량한 자존심은 왜 이때 발동했을까. 지친 기색이 완연하고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는데도 오기를 부렸다.

“갈 수 있어. 계속 올라가자.”

하지만 아내는 내 몸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미안. 내가 힘들어서 그래. 우리 천천히 걷자.”

재빨리 사과를 한 건 아내였다. 그제야 목적지까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미 다리가 풀리고 온몸이 젖어 있으니 누가 봐도 그랬을 거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이 어디 하나일까. 여러 갈래 있어. 어느 쪽으로든 가면 되는 거야. 설령 다 못 가면 어때. 그냥 우리 이렇게 걸었다는 게 좋은 거 아냐?”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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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이든 다 아름답다"


그제야 길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 들꽃도 많았다. 새 소리도 다양했다. 이름 모르는 들꽃은 검색 앱을 사용해서 이름을 찾기도 하고, 새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정상까지 가지 못해도 지금 이 길도 매우 풍성했다.

그래, 목적지가 무어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그냥 천천히 걸으며 내 발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게 더 중요했다.

계곡을 만나면 맑은 물에 발을 담갔다. 한여름 기온과는 상관없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갑다가 아니라 서늘했다.

천천히 걸으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요즘 들어 혼기가 꽉 찬 딸과 중요한 시험이 닥친 아들이 걱정되나 보다. 아내의 머릿속에는 그 모든 것이 서랍장처럼 나뉘어 있었다. 이쪽 서랍을 열면 딸 염려가, 저쪽을 열면 아들 걱정이, 없는듯하지만 그래도 어느 구석에는 내 문제도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4년 임기의 공모 교장을 마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교직 생활 정년이 임박한 나이가 되었으니 아이들 곁에 가서 수업한다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아내는 잘 알고 있다.

동료 교사인 아내는 수업하고 방과후수업도 진행하면서 힘에 부친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간혹 행정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결책이라고 던지는 말은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정작 내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많이 걱정되나 보다.

욕심내지 말라고 한다. 산을 즐기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고.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만이 전부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우리가 지나는 길 위에는 수많은 다른 생명이 있고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간다고. 그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을 한다.

이 길을 걷는 다른 사람도 아름답고,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아름답다고.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자기부정의 삶은 결국 내 삶을 흔드는 것


두 번의 선거를 지나며 심한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교육정책이 폐기되는 걸 보면서 무기력은 심한 좌절로 바뀌었다.

살펴보니 교직 생활을 한 지도 벌써 35년이 넘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름대로 쌓아온 교육철학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뚜벅뚜벅 걸었다. 옆에 누가 걷고 있는지, 새소리, 물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며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끊어진 것 같았다.

물론 아내 말대로 내가 걸은 그 길 말고도 다른 길도 있을 것이고, 그 길에도 걷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쌓아온 여러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적용되는가에 대한 성찰도 없이 오직 정책적 이유만으로 단번에 무너뜨리려는 모습을 보니 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암담함을 느꼈다.

더구나 정년을 앞둔 나이인지라 만회할 힘을 얻기는 이미 그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심한 무기력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공모 교장 4년을 참 열심히 했다. 혁신학교라는 시대적 사명도, 동시에 대입에 대한 요구도, 그리고 근 40여 년을 쌓아온 교육철학을 잘 녹여내어 함께하는 교육공동체와 힘을 다해 실천하자고 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긍지를, 우리 선생님들은 열정을, 학부모들은 든든한 믿음으로 함께 했던 기간이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학교다운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기간이다. 그렇게 살았는데 최근에 나오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신호는 왠지 우리가 그릇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최근에 힘든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것.

아내가 지리산행을 권했던 것은 이때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다른 길은 없을까"


그루터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간벌로 잘린 채 남아 있는 그루터기였지만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였다.

‘저 나무는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구나.’

문득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함께한 수많은 시간이 생각났다. 삶의 나이테.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그 세월은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나이테로 남는 것.

교사는 아무런 힘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했던 모든 일은 아이들 삶의 나이테에 고스란히 담긴다(혁신교육의 나이테, 아이들의 흔적 2022.08.04.). 다른 길도 있다고 아내가 한 말은 놀라운 의미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다른 길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왜 우리는 놓치고 있을까. 여러 길에는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왜 보지 않을까. 또한 자기가 걷고 있는 길만 바라볼 뿐 아이들의 삶에 펼쳐진 길은 놓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들의 삶 속에 새겨지는 길이다.

교육은 아이들 삶 속에 새겨지는 길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직 어른들이 걸었던 길, 그것도 오직 한길로만 가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으로 올라가라고 내몰았다. 그게 옳다고, 그래야 네 장래가 밝다고 아이들을 내몰았다.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살펴보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하며, 함께 걸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모든 양 떼를 한 우리로 몰듯이 다그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길이 있어.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

아내는 계속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숲길이든, 평평한 들길이든, 아니면 우리 인생에 놓인 수많은 길이든 오직 하나의 길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왜 우리는 자꾸만 우리 학생들을 한 곳으로만 몰아넣으려 할까. 왜 우리는 내 앞에 펼쳐진 길만 옳다고 말할까. 다른 길로 가면 안 되는 걸까.

미래 교육 화두가 넘치는 시절이다. 미래 교육이야말로 자기 나이테를 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걸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목장의 양이 아니다. 목동이 원하는 대로 어느 한곳으로 몰려가야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야 할 길이 있는 게다. 설령 다른 길로 간다면 또 어떨까. 새롭게 교육정책을 펼치려는 분들이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양함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김덕년 구리 인창고 교장.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 생태계를 고민했다.영원히 꿈꾸는 교사이고 싶은 교육 낭만주의자로 책 『학교야, 훨훨 날자꾸나』, 『학교에는 꿈꾸는 아이들이 있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과정중심평가』 등을 편찬했으며 교육계에서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우리 아이들의 시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김덕년 구리 인창고 교장.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 생태계를 고민했다.영원히 꿈꾸는 교사이고 싶은 교육 낭만주의자로 책 『학교야, 훨훨 날자꾸나』, 『학교에는 꿈꾸는 아이들이 있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과정중심평가』 등을 편찬했으며 교육계에서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우리 아이들의 시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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