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시작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교육플러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메타버스(Metaverse)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존 미디어리터러시를 뛰어넘는 종합적 능력인 ‘메타리터러시(Metaliteracy)’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교 미디어 종합 센터인 학교도서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교육플러스>는 <전국사서교사모임>과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학교 미래 교육의 발걸음에 이미 동행하고 있는 사서교사의 교육활동을 소개한다.

박혜선 고양 신원초 사서교사
박혜선 고양 신원초 사서교사

현대사회에서 점차 강조되고 있는 리터러시 교육이란 원래 텍스트 기록물에서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1950년대 이후 텔레비전 리터러시를 시작으로 시각 리터러시, 컴퓨터 리터러시, 멀티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등 시대마다 강조되는 매체의 종류와 형태가 계속 변화했고, 그중에서도 미디어가 사람들의 문화와 의사소통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은 점차 커졌다.

2020년 7월에 제정된 경기도교육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지원 조례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여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정보를 검증하려면 기본적으로 검색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평가하고 종합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정보활용능력’이라 부른다.

인터넷 중심의 정보사회에서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제3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살펴보면 도서관은 정보불평등 계층을 위해 정보 및 매체활용 교육 강화의 의무를 진다.

제3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에도 지능정보사회의 기본소양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학교도서관의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사서교사의 역할에 충실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주로 다루는 소셜미디어는 초등학생이 가입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교육은 뉴스 미디어를 중심으로 제작된 자료라 초등 저학년 학생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결국 교육과정에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는 그림책이나 만화, 블로그, 영상물, 텔레비전 뉴스나 광고 등의 매체 자료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 중 초등학생에게 가장 익숙한 매체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의미를 구성하는 매체로, 글로 전달하기 어려운 의미를 그림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표현할 수 있어 독서 교육에도 자주 활용된다.

학년 수준과 연계 교과를 고려해 저학년은 그림책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통해 글과 시각적 이미지가 다루는 정보의 차이에 대해 수업을 진행했다.

정보 활용 과제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중학년은 그림책과 참고도서, 인터넷 검색을 연결하는 수업을 시도했다.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로지의 산책'(팻 허친스 글/그림, 봄볕, 2020) 표지.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로지의 산책'(팻 허친스 글/그림, 봄볕, 2020) 표지.

글과 그림의 언어를 이해하면 그림책이 더 재미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관계에 따라 재미의 요소가 달라지는데 그림책 <로지의 산책>은 이 둘을 반대로 결합해 아이러니를 유발하는 대조 방식을 취한다.

즉 글과 그림이 독자에게 서로 다른 정보를 주거나 한쪽이 다른 쪽보다 정보를 더 많이 가짐으로써 재미를 주는 것이다.

주인공인 암탉 로지가 집을 나와 산책을 한다. 마당을 지나고 연못을 빙 돌고 몇 군데를 더 들러 저녁밥 먹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게 글의 전부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2번 읽어줄 거라고 이야기했고 처음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글만 읽어주었다. 재미있는 책을 읽어 줄 거라 기대했던 아이들의 실망한 표정을 보며 나는 기다렸다는 듯 TV 화면을 켜고 그림을 보여주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어? 여우다!”

사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우 한 마리가 암탉 로지를 몰래 뒤쫓고 있다. 성급한 여우는 로지를 잡아먹으려다 물에 빠지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등 계속 골탕을 먹는다.

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여우가 그림에 등장하자 아이들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림책을 다 읽고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왜 작가님은 글에서 여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제목이 로지의 산책이라 그렇다는 의견부터 그림을 자세히 보라고 그랬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답이 나왔다. 여우 이야기를 안 해서 책이 더 재밌었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고 글에서 찾지 못한 정보를 그림에서 찾을 수 있어 그림을 잘 봐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게 된 것이 수업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림책이 이야기하는 방식 이해하기.(이미지=박혜선 사서교사)
그림책이 이야기하는 방식 이해하기.(이미지=박혜선 사서교사)

수업의 마무리는 아이들이 등장인물이 되어 오늘 겪은 일을 그림일기로 표현하도록 했다. 책에서는 여우가 암탉 로지를 쫓아다닌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여우의 특징을 생각했을 때 암탉 로지를 잡아먹으려 했을 거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잡아먹으려 쫓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로지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몰래 쫓아다녔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고, 실은 여우가 로지와 친구가 되고 싶어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얻을 수 없었던 정보를 상상력으로 메워갔다.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도서관에 개구리를 데려갔어요'(에릭 킴멜 저, 블랜치 심스 그림, 보물창고, 2006) 표지.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도서관에 개구리를 데려갔어요'(에릭 킴멜 저, 블랜치 심스 그림, 보물창고, 2006) 표지.

아이들이 그림책에서 발견하는 동물의 특징은?


도서관 예절 교육에 자주 활용되는 그림책 <도서관에 개구리를 데려갔어요>는 주인공 브리짓이 애완동물들을 도서관에 데려와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풀쩍 뛰어올라 사서 선생님을 놀라게 하는 개구리나 사전을 부리 주머니에 숨겨 다른 아이들이 제때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펠리컨, 긴 목을 이용해 다른 친구의 어깨 너머로 책을 훔쳐보는 기린을 보고 있자면 도서관 말썽꾸러기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소동들은 사실 동물들의 특징에 기인한다. 개구리가 사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이유는 긴 뒷다리를 이용해 용수철처럼 책상 위로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부리 주머니에 사전을 숨겼던 펠리컨은 먹이를 낚았을 때 아랫부리 주머니가 크게 늘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2학기 과학 시간에 동물에 대해 배우는 3학년을 대상으로 첫 번째 시간에는 동물도감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그림책에 등장한 동물들의 특징을 직접 도감에서 찾아보게 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내가 도서관에 데려갈 동물을 도감에서 고르고, 그 동물로 인해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도감에서 찾은 내용을 근거로 짧은 글을 쓰도록 했다.

제일 먼저 수업을 한 반에서 얻은 교훈을 적용해 두 번째 반부터는 사람이나 동물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규칙도 정했다.

도감의 목차와 색인을 뒤적이며 동물을 찾고, 본문의 내용을 읽으며 동물의 특징과 그로 인해 도서관에서 벌어질 소동을 낄낄대며 적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딱따구리를 도서관에 데려간다면' 학생 작품.(사진=박혜선 사서교사)
'딱따구리를 도서관에 데려간다면' 학생 작품.(사진=박혜선 사서교사)

이 책을 활용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유일하게 종이 도감에서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없는 동물이 있다. 바로 하이에나다.

하이에나가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때나 깔깔거리며 웃는 장면을 다시 보여주며 이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이에나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하이에나의 표정이 웃는 모습이라 그런 거 같아요.”

“하이에나가 실제로 아무 때나 웃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웃음소리처럼 들리나?”

여러 답변 중 가장 지지를 많이 받았던 마지막 대답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유아를 위한 사운드북(sound book: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책)을 제외하면 인쇄 매체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성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보원을 묻자 유튜브, 네이버TV, 인터넷 등을 이야기했고, 종이 도감만큼 믿을 수 있는 정보원인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말대로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는 마치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수업을 정리하며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동물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보의 형태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정보원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으니 나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구합니다! 완벽한 애완동물'(피오나 로버튼 글/그림, 책과콩나무, 2010) 표지.
박혜선 사서교사가 수업에 활용한 그림책 '구합니다! 완벽한 애완동물'(피오나 로버튼 글/그림, 책과콩나무, 2010) 표지.

정보 활용 과정 교육 "그림책으로도 문제 없어요!"


등장인물의 자료 조사 과정을 통해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탐색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그림책 <구합니다 완벽한 애완동물>에는 ‘아주아주 재미있는 만물 대백과’가 등장한다.

만물 대백과는 우리가 잘 아는 백과사전으로, 주인공 헨리는 문제 상황에서 백과사전을 활용해 아주 멋지게 과제를 해결한다. 아이들에게 백과사전에 관해 설명하고 그림책에서는 생략된 길잡이 책 ‘색인’을 활용해 백과사전을 찾는 방법을 ppt로 보여주었다.

주인공 헨리는 백과사전에서 오리를 조사한다. 그리고 사전에서 찾은 내용(사실)에 자기 생각(의견)을 덧붙여 ‘오리의 여러 가지 재주’라는 멋진 글을 완성한다.

아이들에게 헨리의 글과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오리를 검색한 웹페이지를 보여주며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설명했다.

사실 강아지가 갖고 싶었던 헨리는 백과사전을 보며 오리와도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들에게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피디아 등의 인터넷 백과사전 검색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함께 놀고 싶은 동물을 검색하도록 했다.

검색 결과에서 동물의 특징을 찾아보고 무엇을 하며 함께 놀 수 있을지 상상하여 패들렛에 입력하게 했다.

갈고리발톱을 가진 고양이와 암벽등반을 하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더운 날에 몸을 식히려 물에 들어가는 호랑이와는 수영하며 놀 수 있을 거라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함께 읽으며 백과사전에서 찾은 내용과 자기의 의견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었는지 살펴보고, 기발하고 재밌는 글을 쓴 아이는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학생들이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찾은 동물들의 특징.(사진=박혜선 사서교사)
학생들이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찾은 동물들의 특징.(사진=박혜선 사서교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답은 학교 도서관"


내가 가장 먼저 시도했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유튜브와 스마트폰, 가짜 뉴스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접하는 내용에 아이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난 이 수업이 아이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급하게 공부해 아이들에게 전달한 내용으로 아이들에게 배움이 일어났다고 자신하지 못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주고자 고민했던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이라는 문제 상황에서 적합한 매체를 고르고 분석해 수업 요소를 찾아내는 능력을 기를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위해 다시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해야 하겠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여기, 학교도서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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