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에 대한 사회적 성찰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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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마스크로 덮힌 세상, 도시인에게 '공기'는  


[교육플러스] 언젠가 늦여름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외부 온도는 25도였고 도서관 열람실 온도는 25도였는데, 열람실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에어컨이 작동 중이었다. 아직 더운 날씨에 창문을 모두 닫아놓았으니 실내 온도가 올라갔을 터이고 사람들은 에어컨을 돌렸을 것이다.

나는 가까운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공부했는데, 한두 시간쯤 후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그 창문은 누군가에 의해 닫혀있었다. 사실 이는 그날뿐 아니라 생각해 보면 교사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늘 보는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풍경이기도 하다.

가령 올 가을에도 교실 창문을 열고자 했던 내 행동은 번번이 학생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위와 미세먼지로 인해, 창문을 열고 싶어도 열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코비드-19 사태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의 건강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공기는 단순한 ‘건강’ 차원을 넘어서, 근대사의 쟁점 중 하나이기도 해서, 19세기 유럽에선 신선한 공기(fresh air)가 사회적 개혁(social reform)을 위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고전적인 위생 개념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순간적인 편안함을 택하는 오늘날 사회적 다수의 요구 속에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도시의 풍경 속에 지난 해부터 코비드-19 사태는 아예 마스크를 덮고 아예 공기를 자유롭게 들이마실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외부 활동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본 에세이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코비드-19 사태에 관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전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감염 질환에 관한 근본 논쟁점


코비드-19 방역과 관련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방역 흐름이 과연 효과적인가라는 물음은 논쟁적이라 할 수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점들에 대한 판단에는 건강과 질병, 환경, 면역 등에 관한 기본 철학이 관계 된다.

특히 쟁점이 되고 있는 미생물의 감염 그리고 이에 대한 방역, 두 요소 모두에 대해 (단기적인 불편함으로부터의 보호나 불편함의 제거가 아닌) 장기적인 위험성과 건강 비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요구한다. 

가장 근본적인 논점은 코비드-19 바이러스가 그렇게 온 사회 구성원 전체가 생활에 심대한 지장을 받고 (가령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살아야 할 만큼 생명에 치명적인가, 즉 인간의 면역 능력을 벗어나는가 라는 점이다.

실제로 코비드-19와 관련하여 주로 관 주도의 역학적 (감염 경로 차단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그 바이러스 감염이 내과적으로, 면역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주제는 여전히 민감하고 논쟁적인 성격을 띤다. 가령 중환자들을 높은 비율로 상대하게 되는 감염내과 등 대학병원의 임상 교수들은 코비드-19의 임상적 성격을 매우 위급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면역학 등 기초의학이나 동네 개업의들 중에는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도 많다. 

(사진=tv조선 캡처)
(사진=tv조선 캡처)

무엇보다 코비드-19 사태와 관련하여 현상에 대한 인식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는 개념적 모호성이 일차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무증상 감염이란 개념은 현재까지 혼동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2019년 코비드-19 사태 초기에는 열도 없고 본인은 못 느끼는데 폐 조직이 괴사하는 등 거의 암환자가 자신이 모르게 종양 조직을 키운 것 같은 어감으로 쓰였지만, 시간이 가면서는 대부분 언론에서 무증상 감염이라는 단어를 사실상 무증상 보균의 개념으로 쓰게 되었다.

즉 아무런 감염 증상 (발열, 발적, 부종, 통증 등)이 없는데도 코비드-19 검사를 해봤더니 양성으로 판정된 경우 이를 무증상 감염이라고 말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 사용은 매우 논쟁적인 측면을 가진다. 

감염은 그리 단순한 현상도, 개념도 아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단지 몸속에 들어와서 존재한다고 해서 이를 ‘감염(infection)’ 상황이라 하기는 힘들다. 감염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침투하여 한계점(tipping point)을 넘어 증식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보통 우리 몸의 (치유를 위한) 면역반응의 일환으로 붓고, 열나고, 아프는 등의 염증 증세를 동반하게 된다.

즉 보균과 감염은 어감에서 뿐만 아니라 의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은 환자가 감염이 되어 턱 아래가 퉁퉁 부어 찾아오면 나름 치과 치료의 관점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급성 감염은 위중한 상황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 감염을 일으킨 세균들은 구강 내 존재하는 정상 세균총에 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즉 인체의 면역 체계와 관련성이 밀접한 감염 현상에 대하여, 이러한 감염이라는 미묘한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 언론에서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감염이라는 표현을 경솔하게 써온 측면이 있다.

특히 면역과 감염의 관계는 코비드-19와 같은 호흡기 감염 질환의 본질을 이룬다. 인간의 몸에서 먹을 때와 말할 때에 주로 개방되는 구강이나 식도 등 소화계 기관과 비교해도 기도(air way)와 호흡계 기관은 외부에 24시간 늘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몸에서 가장 열려 있는 기관(open system)이다.

실제로 기도를 통해 외부 환경에 수없이 존재하는 미생물(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 언제든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체계를 가진 것이 우리 몸의 기본 구조이다. 인간의 몸은 닫힌 계(closed system)가 아니다. 그 결과 수백만 년의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기도 점막은 인간의 신체 그 어떤 부위보다도 면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감염을 미생물이 침투하는 숙주의 면역을 생각하지 않고 침투하는 미생물을 규명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감염 질환에 대해 매우 분절적, 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사진=ktv 캡처)
(사진=ktv 캡처)

코비드-19 사태의 논쟁점


현재 코비드-19의 위험도 내지는 병독성에 대해서는 미생물학적, 면역학적 논란이 존재한다.

가령 코비드-19와 독감 바이러스 모두 면역체계가 약해진 기저질환자나 고령자의 몸 안에서는 쉽게 기도를 거쳐 폐까지 (때로는 신속하게) 조직과 장기를, 그리고 혈류를 통해 몸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위험군이 아닌 이상 대부분 별다른 치료 없이도 완쾌되어 왔다는 점은 코로나와 독감 바이러스가 유사성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가령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상기도부터 폐까지, 아니 몸 전체 조직을 대상으로 하나의 병인으로 진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와 비교해 볼 때 종례의 독감의 경우는 만약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기도에서 폐로 전파되면 폐렴으로 진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는 코비드-19  위험도를 독감이나 폐렴의 경우보다 일정한 정도로 높게 보여줄 수 있는 질병 통계적 착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에서 코비드-19 바이러스가 검출되어도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지난해와 올해 많은 경우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으로 진단되었다. 

코비드-19의 병독성을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사회적 치명률과 관련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의료통계학적 논점이 존재한다. 코비드-19 양성 판정 후 사망한 사람 중에서 코비드-19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고 엄밀하게 의학적으로 판단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연관성(correlation)과 인과성(causality) 사이에 보다 엄밀한 구분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것이다.

가령 바이러스 백신 접종 후 사망과 백신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질병 통계에 있어 정확하게, 혹은 매우 보수적으로 인과성을 인정해온 점과 비교해 볼 때 코비드-19 사망과 코비드-19 감염 간의 인과성은 그와 같이 엄밀한 기준이 적용되어 통계가 누적되어 왔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실제로 코비드-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고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안 받거나 상관 없이 양성인 상태로 사망했으면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으로 일반적으로 분류된, 즉 엄격한 사인 분석이 이루어 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엄밀하게 사인을 판단하려면 시체 부검을 해서 폐의 조직 검사를 하는 정도가 요구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신 접종 후 사망의 사례에서처럼 사회적으로 철저한 사인 판단을 해야할 유인도 없었으며 그래야 할 압박도 없었다. 

(사진=k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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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와 도시의 공기


위에서 거론한 코비드-19와 관련한 다양한 논쟁적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다분히 현재의 상황은 불필요하게 공포가 대중에 확산되어진 결과라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논점으로서 도시에는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보다 인간의 생명에 더욱 치명적인 위험 인자들이 넘쳐난다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코비드-19 같은 바이러스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전혀 불편함이나 위험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욕망일 뿐이다.

가령 길을 가던 한 초등학생 꼬마가 덤프트럭에 치여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어도 무덤덤하게 그 보도 기사는 이내 다른 기사들에 묻혀 지나가고 만다. 아무도 기억하거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건이 된다. 도시에 살면서 으레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풍경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도로 교통체계의 문제점이 초래한 사건이며 문제점 역시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보행자 우선의 원칙이 교통체계 전반에 걸쳐 결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는 어떤 의미에서 충분히 제거할 수도 있는 위험 인자를 사회적인 무관심 혹은 더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효율성을 위해 방치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코비드-19 사태 속에서 2년간, 즉 생활화된 ‘공포에 사로잡힌’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그 구성원들은 보다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함께 숨쉬는 ‘공기’, 특히 도시의 대기와 관련하여 모두가 불편해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가령 위에서 얘기한 도시의 높은 교통사고 사망 발생율 외에도 자동차를 몬다는 것은 담배 연기보다 수백 배 나쁜 공기를 도시 대기에 내뿜고 있는 것이며, 설령 전기차를 탄다 해도 아스팔트와 타이어 사이의 마찰로 발생하는 무수한 미세 환경오염 입자들을 대기에 주입시키는 상황을 초래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동차 운행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유류세 상승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면 대다수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자동차를 못 타고 다니게 만드는 그러한 정책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과 도시는 이러한 위험 인자들을 지금껏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해왔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오는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모두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이유로 위험 인자들은 도시인의 삶의 곳곳에 상시 공존한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다수의 단기적 편안함 그리고 효율성을 위해 장기적인 위험성을 방치 혹은 위험성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질병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흔하게 관찰된다.

실제로 감염 질환 자체로 인한 (미생물의 높은 병독성 자체가 사망 주원인이 되는) 사망은 현대 선진국 사회에서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 훨씬 더 사망의 주원인으로 흔한 질병은 바로 혈관계 질환이나 암 등이며 그 심각성에 있어서도 이들은 감염 질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 유지'를 떠올릴 때 목표로 삼는 것은 '지금' 감기나 독감 등의 감염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보다는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가뜩이나 약해진 면역체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기저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성인병들에 대한 예방법은 (물론 현대 의학적 수준에서 우리가 그 원인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단순하며 널리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자고, 최대한 몸을 많이 움직이는 등 많은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건강 지식들이 그것이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고자 혹은 면역력을 높이고자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건강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높다. 

분명 의료시설에 대한 높은 접근성과 높은 위생 환경에서 오는 단기적 이익들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물리적 환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그 주거인들의 건강에 분명 해로운 많은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가령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점차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기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아니 아예 차단된 채 느낄 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동차 바깥, 창문 바깥의 공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더 이상 신경 쓰는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현재의 코비드-19 사태는 지금껏 당연하게 여기며 숨쉬어 온 ‘공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한 가지의 근본적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병들어 있다면 건강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도 그에 따라 제한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방역의 일환으로 시행되어온 마스크 강제 착용 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여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바이러스가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지기도 한다. 미증유의 팬데믹으로 알려진 상황 속에서 미세먼지는 이미 대중의 관심 저편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연간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호흡기 감염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숫자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다. 가령 이미 2013년에 Lancet의 한 논문에서 그해 PM 2.5수준 미세입자 노출로 인한 중국인 유아 사망자의 수만도 91만6000명으로 계산했었다. 건강하지 않은 공기 속에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바람을 반가워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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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면역력 있는 도시로의 회복


미세먼지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가의 질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인이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 특히 도시 환경과 도시의 대기가 우리 자신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건강하게 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는 사실이다. 이 현실의 근본에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사고의 경향성이 지극히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외부 자연 공기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면, 창문이나 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자연 바람과 환기에 대한 강조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손소독제와 마스크 사용 등에 비대칭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지배적이었다. 

위생은 건강을 위해 존재한다. 중국의 도시들처럼 한국의 도시도 사람들이 자연 바람을 제대로 쐬면서 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바이러스든 미세먼지든,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들은 자신들이 숨쉬는 공기가 더 이상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도전 받고 있다.

미세먼지는 매년 심해져 왔지만 차와 도로는 갈수록 더 늘어나고 숲은 사라지고 있으며, 도저히 건강해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도시 환경은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혈당 수치와 칼로리 섭취량만 들여다보며 살고 있다. 보행자의 편의보다 자동차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도로교통 체계, 녹지와 숲의 중요성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무관심, 계단을 대신하여 불필요하게 많이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등 장기적인 건강보다 근시안적 편리를 추구하는 사례들은 도시에서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학과 문학, 의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염과 면역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우리'는 문제 없다고 믿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제나 문제는 '그들', 즉 우리 밖에 있는,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고 우리의 욕심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외부의 적, 가령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문제라고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결국 한 사회의 건강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가장 큰 책임은 그 사회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위급한 감염 질환인 코비드-19 사태 속에서도 도시인들의 건강을 위한 장기적인 접근에 있어 가장 핵심은 면역력을 살린 도시로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배민 서울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배민 서울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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