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 교직이 흔들리고 있다. 그간 눌려왔던 학교 문제점이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교사들 목소리가 연일 밖으로 향하고 있는 요즘, 어깨가 무거워 진다. 그나마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에 앞으로는 좋은 교육을 위해 건전한 논의를 펼칠 무대가 열렸다고 생각하고 싶다. 학교가 살아야 우리의 내일이 밝아지는 법.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플러스>는 충북 제천 대제중 교사들의 칼럼을 통해 교육주체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엄재민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교사. 25년차 국어 교사로 평소 글쓰기, 인문 독서 등을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글이 사람을 바로 서게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글로 나를 나타내고, 글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어한다.
엄재민 충북 제천 대제중학교 교사. 25년차 국어 교사로 평소 글쓰기, 인문 독서 등을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글이 사람을 바로 서게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글로 나를 나타내고, 글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어한다.

개학을 맞은 지 3주. 한참 걱정을 했건만 그래도 다행이다. 안 하던 수업을 해야 하기에 나도 힘들 것이고 아이들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안하던 일을 하면 어딘가가 부자연스러워지고, 적응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다. 아이들도 생각보다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내 얘기를 듣고, 나 또한 저 밑에 숨겨둔 힘을 끌어올려서 열심히 수업을 장악하려 한다. 올해는 한 번 잘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아직까지 약효를 유지한다.

이제 날이 더워지고 나른해지기 시작하면, 그리고 중간고사를 마치면 마라톤 같은 이 학습의 대열에서 조금씩 뒤처지는 아이들이 나올 것이다. 뛰던 걸음을 걷는 걸음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 발생 시점을 늦추기 위해 노력을 할 뿐이다.

하지만 서서히 분열의 조짐이 보인다. 앞 시간이 체육이어서 그런지 교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진달래꽃이 잔뜩 피었다. 때 이른 여름을 만난 듯, 일찍 찾아온 계절이 교사를 당황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교사를 유혹에 빠뜨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오늘은 수업 안하면 안돼요? 힘들어요.”
“재미있는 얘기 해주세요.”
“쉬었다 가요. 선생님, 멋있어요.”

힘든 건 체육 시간에 열심히 뛰어 놀았기 때문이고, 너네의 힘듦은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 때문에 힘들다면 내가 바꿔야 하지만 그게 아닌데, 왜 국어 수업 시간을 줄여야 하는가? 체육 수업이 끝나고 바로 그 다음 수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말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하나마나한 말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러니 차라리 조금 돌아가는 편을 선택하는 게 오히려 현명할 수 있다. 화장실도 다녀오게 하고, 시원한 물도 한잔 마시라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전 시간의 잔상을 없애고 몇 분 늦게 수업을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공부 말고 다른 걸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교과서와 상관없는 곳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공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수업 중 하는 교사의 말과 행동은 모두가 공부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놓고 하는, 소위 진도를 나가는 걸 싫어한다. 그러면서 늘 꾸준하게 작은 일탈을 유도한다. 그리고는 교사가 하는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귀를 기울인다. 평소에 열심히 학습에 참여하지도 않는 녀석들이 좀 놀자고 하는 말을 수시로 한다.

공부는 재미가 없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리가 있기는 하다. 하기야 착실하게 수업을 따라오는 아이들인들 어찌 솔직하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차마 안할 뿐이다. 쑥스럽기도 하고, 어쩐지 선생님께 그런 요구를 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속으로는 다들 그러기를 바라면서.

수업을 벗어난 엉뚱한 얘기로는 첫사랑 얘기만 한 것이 없다. 오늘도 그랬다. 느닷없이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물론 원인 제공은 내가 했다. 비유와 상징을 배우는 시 단원에서 꽃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 단초였다.

아름답다, 향기, 축제, 사랑, 선물, 개나리, 화려함, 장미 등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다른 것들이 많이 나와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사의 시범 보이기에서 “나는 ‘여자’가 생각난다”고 먼저 말한 게 화근이었다.

사춘기 남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수준 낮은 보여주기가 마음을 편하게 했나 보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사람의 속성이다. 내 어린 시절, 남녀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서로 마주한 채로 무언가를 했던 적도 거의 없었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래서 여학생을 낯설어하는 건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이런저런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첫사랑 이야기가 궁금했었나 보다. 바로 돌직구가 날아왔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내가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해준들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도 잘 모르는 첫사랑을 애들에게 말해줘야 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의 아내가 첫사랑이라고, 그래서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소중하기에 가슴에 품고 있다고 했다. 행여 입 밖으로 내기라도 하면 아끼고 아끼던 것이 터져 버릴까봐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야유와 환호, 설마 하는 갸웃거림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사는 내 방식대로 아이들에게 나를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이어 질문이 터져 나온다. “언제 만났어요?”, “처음 만나서 뭐 했어요?” 등등.

적당히 둘러대면서, 사람마다 다른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선생님의 경우를 안다고 그와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사라는 직업은 이성과 감성을 순간적으로 바꿔야 하는지라 내 사적인 이야기로 감상에 젖을 수만은 없었다. 너희들의 첫사랑이 궁금해진다고, 멋진 첫사랑을 만나기를 기원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적당히 멈추었다.

어디를 가든, 언제든 사랑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사랑을 소재로 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책이 있는 것만 봐도 사랑의 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교사로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도 더 좋은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한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해서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멋진 사랑을 이룰 수 있다.

결국은 모든 결론이 선생님다울 수밖에 없다. 이건 내 한계다.

내 첫사랑 이야기가 단지 킬링타임용 해프닝에 머물 수는 없는 일. 이런 걸 교육적으로 응용해내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설레고 뜨거워 보이는 첫사랑의 뒷면에는 진지하고 고결한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도 알게 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즉석에서 시를 한 편 소개했다.

(사진=엄재민 교사)
(사진=엄재민 교사)

고재종 시인의 '첫사랑'을 골랐다. 이렇게 해서 교과서 밖 시 공부를 한다. 시 단원 학습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오히려 교과서 안의 시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다.

고민하고 집중하면서 화면을 보며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예쁘다. 진지하게 시를 들으면서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기도 한다.

절실하면, 생각을 하면 시는 쉽게 다가오는 법이다. 시에서처럼 간절함이 우리 아이들 속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기에.

시 '첫사랑'을 음미하는 대제중 학생. (사진=엄재민)
시 '첫사랑'을 음미하는 대제중 학생. (사진=엄재민)

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어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 고재종

충북 대제중학교의 ‘따로 또 같이’ 모임 교사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부터, 교사가 바로 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교사를 중심으로 교육 바로 세우기 담론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사진=따로 또 같이)
충북 대제중학교의 ‘따로 또 같이’ 모임 교사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부터, 교사가 바로 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교사를 중심으로 교육 바로 세우기 담론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사진=따로 또 같이)
저작권자 © 교육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