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가 제시하는 공부법을 생각하며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교육플러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사회생물학의 거두이자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많은 집필과 강의로 일반인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학자이다. 그는 서울대 학사를 거쳐 펜실바니아 대학의 석사, 하버드대학의 박사를 취득하고 하버드대에서 장기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 우리 교육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많이 하기에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부모들은 최 교수에게 이런 질문들을 한다. “교수님은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아이가 교수님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최 교수는 이에 대한 답변과 연계하여 진정한 공부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 안희경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밝힌 바를 이 글에 압축, 요약하여 그 핵심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자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사는 침팬지들은 견과류를 깨 먹는데 돌 도구를 이용합니다. 돌을 밑에 받치고 열매를 올린 뒤 다른 돌로 내리치지요. 이 활동을 새끼들이 옆에서 배웁니다. 엄마 침팬지가 받침돌을 까는 걸 보고 뚱뚱한 돌을 가져옵니다. 당연히 열매를 올려놓으면 계속 굴러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새끼들은 열매를 까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에야 스스로 터득하게 됩니다. 물론 엄마 침팬지도 새끼가 실패하는 것을 알지요. 하지만 엄마 침팬지는 자기 열매만 계속 깨 먹고 '배고프지? 엄마가 까줄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 부모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잔소리부터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굴러 떨어지지. 평평한 돌을 가져와~'"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아이도 있고, 잘못하는 아이도 생긴다. 문제는 잘못하는 아이는 왜 부모가 평평한 돌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못 할 수밖에 없다.

침팬지가 배우듯이 시간을 두고 몸으로 익히면 긴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한 학습이 될 텐데, 우리는 아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밥까지 떠먹여 주는 식으로 너무 급하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볼 일이다.

최 교수의 지적처럼 약간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면 좋겠다. 먼저 가르치려고 덤비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는 한때 배움 중심 수업이란 명목으로 널리 회자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물가에 말을 끌고 갔으나 정작 그 말이 물을 먹지 않으려 하면 어찌할 것인가? 스스로 물을 왜 먹어야 하는지 깨닫고 이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교육 즉,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딴짓해도 된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대학 입시 준비는 안 하고 미술 한다고 수업을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딴짓이 다 제 삶에 도움을 주더라고요. 제가 하버드대에서 민벌레 연구로 박사논문을 쓸 때 나무를 조각해서 민벌레의 서식 환경을 재현하고 그 집을 만드는 데 성공한 덕에 아무도 보지 못한 민벌레의 행동을 상세히 밝혔습니다. 제가 만일 고등학교 때 잠시 조각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딴짓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지요”

그렇다. 흔히 ‘경험은 최고의 스승(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이라고 한다. 특히 융합, 통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는 다양한 경험 축적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특정 분야에는 박식하지만 좁고 깊은 지식의 소유자가 되어 소위 ‘전문가 바보’가 되기 쉽다. 이를 극복하는 보완책은 평소 다양한 딴짓을 했던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모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인 ‘정글 탐험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평소 다양한 체험과 지식이 몸에 축적되면 정작 필요한 생존의 시기에 적절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삶의 풍요로운 지식과 체험은 어려서부터 적극적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다양한 경험은 나중에 어느 때이든 그것이 살아가는 데 피와 살이 되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최 교수는 그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속도보다는 사고력을 기르자

“하버드에서 생태학을 가르칠 때였어요. 수업 중에 수학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어서 미적분을 알아야 풀 수 있는 숙제를 2주간의 기간을 주고 숙제로 냈습니다. 수강생 80명 모두가 숙제를 제출했어요. 한 학생에게 어떻게 풀었냐고 물었더니 도서관에서 미적분학책을 읽으면서 풀었다고 하더군요. 서울대 교수 시절 하버드대에서 냈던 숙제를 그대로 내고, 3주 줄 테니 미적분학책을 보고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못 풀었어요. 미적분학책을 읽을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미국 학생들은 한 시간을 주고 풀라고 하면 못 풀지만 2~3주 시간을 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풀라고 하면 대부분 풀어냅니다. 우리나라는 시간 안에 경쟁하는 문제 풀이 훈련만 시키고 실제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좌우하는 능력을 키우진 않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건 아니잖아요. 주어진 문제를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 푸는지가 아니라 어떤 자원을 동원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제 학교 공부는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생 백세’ 시대다. 학교 교육은 인생을 장기전으로 볼 때 빠르게 지름길로만 가려고 하기보다는 돌아서 굽이굽이 난 길로도 갈 수 있는 인내와 끈기를 교육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습득하는 사고력은 평생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트위트 본사에 걸린 슬로건인 <내일은 더 나은 실수를 하자(Let’s make better mistakes tomorrow)>처럼 실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급한 결과만을 도출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삶도 멋지지 않은가. 생각의 힘은 바로 이런 여유에서 길러진다고 믿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체험을 중시하는 배움의 순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단지 지식의 ‘소지’에 머물지 않고 지식을 ‘체화(體化)’된 교육으로 구조화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야 학교가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명실상부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하버드와 서울대, 두 학교에서 가르친 석학이 제시하는 공부의 방법은 분명 우리나라에서 학교 공부를 통한 배움과 또 교육하는 방법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참고한 문헌> 최재천, 안희경,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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